해발 1000m 라벤더 마을의 ‘보랏빛 향기’

[중앙일보] 입력 2009년 07월 17일

‘에코맘’은 고민이 많다. 애써 찾아낸 유기농 인증 상품이 진짜인지, 안전한지 궁금해서다. ‘내 아들ㆍ딸이 쓸 제품, 내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이니까’ 조금 비싸더라도 유기농 제품에 주목하게 되는 게 최근의 소비자 트렌드다. 그런데 에코서트(ECOCERT)니 하는 유기농 인증 마크만 믿어도 될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좋아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라벤더의 유기농 수확 현장을 찾아가 살폈다. 







전통 가마에 라벤더 쪄 오일 얻는다 





프랑스 동남부. 파리에 이어 둘째로 큰 도시 리옹에서 버스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도시 발랑스. 인구 16만여 명의 소도시인 발랑스에서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여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른 곳은 주민 수 25명의 레슈엉디와 마을이었다. 알프스 산맥, 몽블랑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을을 둘러싼 풍경이 한국의 강원도를 연상케 한다. 해발 1000m를 넘는 마을 곳곳에서는 연보랏빛 라벤더가 한창이었다.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가 라벤더 수확철이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라벤더는 두통 치료와 신경 안정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해서 서양에서는 민간요법에 널리 쓰인다. 향이 좋아 아로마 오일, 향초 등으로 만들고 화장품 원료로도 인기가 높다. 최근 국내에서도 라벤더 등 천연 아로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오일을 추출하는 전통 가마에 불을 떼던 주민 이브 베르망이 라벤더 오일 추출법을 소개했다. 그는 현재 레슈엉디와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원로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수백 개의 전통 가마가 있었죠. 장작 떼고 남은 재로 추출기 원통의 이음새를 바를 만큼 자연 그대로의 장치예요.” 지금은 현대화된 압착기가 주로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한편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라벤더 오일을 추출하고 있었다. 라벤더 오일 거간꾼인 미셸이 설명을 거들었다. “현대식 압착기도 유기농 원칙에 맞도록 냉각 시스템엔 물을 씁니다.” 



라벤더 오일 추출 방법은 이렇다. 우선 꽃을 포함한 줄기까지 가마에 넣고 수 시간을 쪄낸다. 가마솥 뚜껑에는 찜솥에서 나온 증기를 모으는 원통이 있고 원통에 모인 증기가 냉각수가 담긴 통을 지나 에센셜 오일과 물로 변한다. 현대식 추출기도 같은 방식. 유기농법으로 라벤더를 키우기도 어렵지만 오일을 뽑아내는 과정도 유기농 원칙에 맞추려면 그만큼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레슈엉디와에서 생산하는 라벤더 에센셜 오일은 현지에서 1ℓ에 180유로(약 33만원)에 팔린다. 1ℓ의 에센셜 오일을 뽑아 내려면 라벤더 1t이 필요하다. 



재배부터 추출까지 모든 과정이 유기농



취재에 동행한 아베다의 최고 조향사 시오자와 고이치가 라벤더 수확 현장을 안내했다. 아베다는 유기농 화장품으로 유명한 미국 브랜드. 고이치가 라벤더에 대해 설명했다. “본래 야생에 서식하는 라벤더는 높은 산에서만 자랍니다. 레슈엉디와 같은 곳은 천혜의 환경이죠. 1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고 서늘하거든요.” 고이치는 레슈엉디와 마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라벤더가 자라기에도 좋은 환경이지만 유기농법을 하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주민 수 25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곳을 오염시킬 요인이 별로 없어요. 라벤더 밭에만 농약이나 살충제를 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을, 산 전체가 화학 약품 따위와는 거리가 먼 곳이죠.” 



밭에선 열 살쯤 돼 보이는 소년들이 부모들의 라벤더 수확을 거들고 있었다. 소년들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친 풀밭이었다면 금세 피부에 이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토종 라벤더는 병충해에 약해 농부들은 늘 살충제를 뿌리고픈 유혹에 빠진다고 한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제초제도 필수. 하지만 유기농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곳의 라벤더 밭에는 군데군데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성했다. 농부들은 라벤더를 수확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들꽃들을 꺾어내 버릴 뿐이다. 1시간여 작업을 지켜보고 직접 라벤더 수확도 해 봤지만 반팔, 반바지 차림의 취재진 누구에게도 피부 발진 같은 이상은 없었다. 



고이치가 설명했다. “아베다는 유기농 원료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현지 농가에 유기농 전환 자금도 지원합니다. 그만큼 진짜 유기농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죠.” 유기농이라고 부르기 위해선 3년 연속 유전자 변형이나 석유화학 비료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살충제나 제초제 사용금지 또한 물론이다. 심지어 벌레를 쫓기 위한 반사판 사용도 금지된다.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원료를 사용하고 미국에 있는 제품 생산 공장의 공정까지 유기농 인증을 받았지만 정작 아베다에서 출시하는 화장품들엔 유기농 관련 인증 표시가 없다. 고이치는 이렇게 답했다. “아베다는 한 곳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여러 곳의 기관에서 인증을 받아요. 그러다 보니 제품에 그 모든 마크를 넣을 자리가 없다는 게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갑자기 유기농 작황이 좋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급히 유기농 원료를 수급했는데 인증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때문이에요. 사실 마크 같은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화장품 회사보다 더 많은 유기농 원료를 쓰고 있다는 건 생산자인 우리의 신념이고, 소비자도 이미 그걸 알고 있으니까요.” 



발랑스(프랑스 동남부 도시)=강승민 기자기고자 : 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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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향수 과소비

2012. 7. 25. 18:43 from 컷터칼

<분수대>향수 과소비

[중앙일보] 입력 1997년 02월 21일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에게 어느날 한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무슨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드는가.먼로의 대답은 간단했다.샤넬 넘버 5.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향수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러시아 출신 조향사(調香師) 에르네스트 보는 샤넬을 위해 향수를 만들었다.그는 합성향료 알데히드를 사용,10가지 향수를 만들었다.1번에서 5번,20 
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붙였다.이중에서 가장 샤넬의 마음에 든 것이 5번이다.1922년 탄생한 샤넬 넘버 5는 지금도 세계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향수의 역사는 오래다.고대 이집트 여성들은 몸의 부분에 따라 다른 향수를 뿌렸다.자연 그대로를 좋아한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얼굴화장은 피했으나 향료만은 좋아해 머리.피부.옷에 각각 다른 향료를 뿌렸다.로마인들은 전쟁에 나갈 때도 
향료를 바르고 나갔다.중세시대 향료는 퇴폐와 방탕의 상징으로 금지됐으나,11세기 십자군원정때 유럽에 다시 향료가 들어왔다. 
1370년 헝가리 왕비 엘리자베드는 최초의 알콜향수인 '헝가리 워터'를 개발해냈다.그때까지 향수라면 향료나 향유를 가리켰으나,헝가리 워터는 꽃잎에 알콜을 부어 증류시킨 것이다.당시 80세였던 왕비가 이 향수를 사용하자 폴란드 왕이 
구혼했다는 얘기가 있다. 
화학적으로 향수를 합성하는 합성향료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1920년대 들어 분석.합성기술의 진보가 두드러져 동.식물 방향(芳香)화합물은 물론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향료화합물까지 합성해냈다.현재 존재하는 향료는 3천가지가 
넘는다.조향사는 이것들을 잘 섞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낸다.향수 하나를 만드는데는 보통 수십 또는 1백수십가지의 조향 소재가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향료를 애용해 왔으나 알콜향수가 도입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향수는 대부분 수입품이다.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향수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다.지난해 향수 수입액은 2억2천만달러로 전년(前年)에 비해 배증(倍增 
)했다.특히 젊은층에서 향수 소비가 늘어 생일.크리스마스 선물로 외제 향수가 인기라고 한다.우리사회의 큰 병폐인 과소비가 향수에까지 이른데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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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야기>11.佛 화장품 겔랑

[중앙일보] 입력 1995년 06월 28일

『네(nez)는 네(nee)에서 나온다.』 프랑스에서는 「겔랑」을 두고 이런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코(鼻)를 말하는 「네」(nez)는 향수의 좋고 나쁨이 「조향사(調香師)」의 코에 달려 있다고 해서 조향사라는 뜻으로도 통한다.뒤의 네(nee)는 집안.가계(家系)를 의미하는 단어로결국 『좋은 조향사는 좋은 가문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창업주인 피에르 프랑스와 파스칼 겔랑은 1828년 파리에 첫화장품가게를 열어 영국산 향수.립스틱.비누.크림.치약 등을 수입해 팔았다.그리고 고객들의 취향에 맞는 향수를 직접 제조하면서 벨기에여왕,독일귀족,나폴레옹3세妃 등의 공식 향수제조자가 되어 명성을 떨쳤다.현재의 필립 겔랑(67)회장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조향을 비롯한 제품개발과 경영을 가문의 후손들이 전담해오고 있다.특히 1백60여년간 내놓은 3백20여개 향수의이름에는 하나하나 사연이 깃들여 있 다.
「미쓰코」(1919)는 『나비부인』의 각본을 쓴 클로드 파렐의 베스트셀러소설 『라 바타유(戰場)』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는데,이 향수를 즐겨 사용한 진 할로(미국 여배우)의 이혼한前남편이 그녀를 찾아가 이 향수를 온몸에 붓고 자살했다고 해서더욱 유명해졌다.
「샤리마」(1925)는 인도의 샤 자한 왕자가 부인 문타즈 마할을 위해 지은 정원이름에서,「야간비행」(1933)은 『어린왕자』로 유명한 생 텍쥐페리가 다카르~브라질간을 야간비행하고 나서 쓴 체험기의 이름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1989년에 나온 「삼사라」는 현재의 조향사인 장 폴 겔랑(58)이 백단을 좋아하는 애인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화장품분야에서도 유명해 피부노화방지 스킨케어인 「이시마 라인」,마법의 파우더라는 「메테오리트 파우더」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93년도 매출은 22억프랑으로 파리에 본사와 7개의숍,2개의 뷰티 인스티튜트,외국엔 23개의 지사 와 1만3천개의 화장품점포가 있다.한국에서는 ㈜서다(瑞多)가 수입해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에 팔고 있다.
李在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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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화학 서형제씨

[중앙일보] 입력 1993년 03월 15일


『조향은 예술이다. 음악을 작곡하 듯, 물감을 배색해 그림을 그리 듯 여러 가지 향을 배합해 새로운 향을 탄생시킨다』향수나 화장품·비누 등에 쓰이는 각종 향기를 만들어내는 조향사 서형제씨 (32·태평양화학 중앙연구소 향료연구실 선임연구원).
숭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후각이 뛰어나」 89년부터 조향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오선지를 보고 음률을 떠올리 듯 머리속에서 자유자재로 냄새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다.
버스속에서 옆자리 여성이 사용한 화장품이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인지는 물론 세계 유명향수들을 냄새만으로 모조리 알아맞힐 수 있다는 그는『현재 향수 및 그 원료들을 거의 외제에 의존하는 것은 국내 조향사들의 유기합성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국내 시장이 크지 않아 수입품의 가격이 더 저렴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에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냄새는 모두 40만종. 그러나 일반적으로 조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천연향 2백종, 합성향 1천여종이다.
그가 입사초기나 지금이나 출근해서 하는 일은 각종 냄새를 익치고 기억하기 위해 부단히 냄새를 맡아두는 것, 자연의 냄새를 추출 합성하고 조향하는 것 등이다.
『냄새도 맡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는 그는 여러 가지 냄새가 혼재된 속에서 자신이 맡고 싶은 냄새를 연상하면 곧. 그것을 찾아내 맡을 수 있게 됐다.
향기는 몇개의 군으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향수를 만드는데는 1백50∼2백가지의 원료가 섞이게 된다. 때문에 자신이 구상한 배합 처방으로 원하는 냄새를 만드는데 어떤 때는 1백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한다.
처음에는 향이 좋다가도 시간경과 후 변하는 것, 향수자체의 변색, 이를 도포한 피부의 안전성 등을 고려해 사용해본 후 다시 수정을 가하기도 한다.
그는 향이 후각적 만족을 줄 뿐 아니라 스트레스해소· 긴장완화· 활력증진· 각성 등의 심리적 효과도 있다고 덧 불였다.
『사람들이 화장품·세제 등을 선택할 때 포장 다음으로 냄새에 영향을 받는다』는 서씨는 냄새에 대한 소비자 공통기호를 찾아 가능한 한 많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향을 개발해 내는 것이 조향사의 최대 관심사라고 전했다.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향 중 자랑으로 삼는 것은 태평양화학의 분말세제「빨래박사」의 향. 감귤냄새와 자스민향을 혼합, 빨래 후의 청결감을 드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
또 설악산 오색약수터에 가서 삼림냄새를 포집, 이를 활용한 건물 내부 살포용 삼림욕향, 조향팀의 다섯 연구원들과 함께 들의 쑥을 채집하고 향을 추출해 쑥향 비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향료는 제품 원료 중 0·2~0·3%를 차지한다해도 실제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30%에 육박하는 고부가가치상품인데다 경제적 여유증진과 함께 소비가 급증하는 만큼 앞으로 조향사의 직업적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조향사는 15명 정도.
지난해의 홍콩연수에 이어 최근 프탕스 향료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그라세에 9개월간의 연수를 떠났다. 그의 수입은 이 회사 연구원이 받는 수준이다. <고혜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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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조향사 양해주씨

[중앙일보] 입력 1981년 03월 17일

양해주씨(34·경기도 안양시 석수동101의6)에게 겨울은 남달리 싫은 계절이다. 특히 지난 겨울처럼 날씨가 추워서 감기 걸릴 위험이 많은 해는 딱 질색이다.
같은 감기라도 목감기나 몸살감기쯤은 관계없지만 코감기에라도 걸리는 날에는 직업인으로서 양씨의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냄새를 맡을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냄새를 맡으면서 이 향료와 저 향료를 섞어가며 새로운 향냄새를 개발하는 직업. 「태평양화학 향료연구실 주임 조향사」가 그의 직함이다.
화장품을 안 쓰는 여성은 거의 없고 향료가 들어가지 않는 화장품도 드물다. 그렇게 양씨가 자리잡은 곳은 여성미의 뒤안. 그는 그 길을 7년째 걷고있다.
현재 양씨가 알고 구분해 낼 수 있는 냄새는 향냄새만 4백여종. 보통사람은 매운 것 단것까지 합해도 겨우 10여종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인연으로 향료연구실에 배치된 75년2월에는 양씨도 물론 10여종의 냄새밖에 구분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화공약품이나 배합하고 새로운 반응을 연구하는데는 스스로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수많은 향료의 냄새를 모르고는 새로운 향냄새를 개발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시작한게 코의 훈련이었다.
각각 작은 유리병 속에 담긴 20종의 향료-이것이 양씨가 출근 첫날 선배로부터 받은 훈련 과제물이었다.
과제물은 냄새가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것들이었는데도 처음에는 이 냄새가 저 냄새 같고 그 냄새가 이 냄새 같았다. 더구나 회사 건물 안에는 항상 화장품 냄새가 충만해있어서 과제물냄새를 익히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 옥상을 주로 이용했습니다.』그곳에는 바람이 잘 통해 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종일 20개의 향료병과 씨름을 했다. 집에도 가지고 가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냄새를 빨리 익히겠다고 한 냄새를 계속 오래 맡아서도 안 된다. 사람은 대개 한가지의 냄새를 3분 이상 짙게 계속해서 맡을 경우 얼마동안은 다른 냄새를 구별할 수 없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3분 가량 계속 맡고 3분 가량은 쉬었다.
그렇게 종일을 짙은 향냄새 속에서 살다보니 온몸이 냄새에 절어 「버스」를 타면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사내가 겨우 한다는 짓이…하는 생각이 치밀기도 했어요.』
그 20종의 향냄새를 익히는데 꼬박 20일이 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로 뚜렷이 냄새가 다른 그 20가지 향료 하나 하나마다 이웃이 되는 비슷한 냄새들이 양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힘든 고비지요.』
흔히 1단계 훈련기간이라고 부르는 6개월 동안 양씨는 이를 악물고 1백50종의 향냄새를 익히는데 성공한다.
사람의 코는 두뇌와 같아서 훈련만 시키면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 하다는게 정설이다. 그러나 냄새를 익혀야할 향료는 너무나 많다. 현재 알려진 것만도 천연향료 1천5백 종에 합성향료 6백 종 해서 2천여 종.l급 조향사인 양씨가 지금도 틈틈이 냄새맡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향료라고 해서 모두 냄새가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장미의 경우 미량까지 따지면 2백여 종이나 되는 각가지 단향으로 구성돼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인 「알데히드-C-8」이란 단향은 꼭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
또 「자스민」의 단향 가운데 「인돌」이란 향은 인분 썩는 냄새와 비슷하다. 그런 기상천외의 냄새들이 합해져서 장미나 「자스민」의 황홀한 냄새를 내는 것이다.
그 단향들이 똑같은 양으로 섞여있는 것도 아니다. 조향사들이 A라는 단향과 B라는 단향을 섞을 경우 비율이 1대1이었을 때와 1대2 또는 2대1이었을 때 모두 다른 냄새가 되는 것. 그 가운데 어떤 냄새가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문제는 어떤 단향들을 어떤 비율로 섞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보다 싼 새로운 향을 조합해내느냐는 것. 그게 바로 조향사들의 임무다.
우리 나라에 있는 단향은 현재 겨우 5백여종. 78년, 4개월에 걸친 양씨의 해외연수도 바로 국내에 없는 새로운 향냄새에 익숙해지려는 「코의 해외 유학」이었다. 「스위스」의 「지보단」, 「프랑스」의 「그라스」, 일본의 「하세가와」 등 세계굴지의 향료회사를 거치면서 양씨는 조향사로서의 능력과 긍지를 길렀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필요한 향료의 90%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있지만 그들 나라는 이미 끊임없는 조향기술의 개발로 전 세계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양씨도 그동안 많은 향료를 조합해냈고 요즘도 매년 50건 정도는 새로운 향료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조향에 관계하고있는 사람은 50여명 정도. 그 가운데 실제로 향을 조합하고 개발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같은 경우는 향의 천연자원이 부족한데도 유능한 조향사를 많이 양성함으로써 오래 전에 향료의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우리도 유능한 조향사가 많이 양성돼야겠어요. 우리라고 향료수출국이 못되란 법 없지 않아요?』향료수출국으로 가는 주역, 그것은 양씨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직업 자체에 대한 정열이 대단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무실에서나 휴일의 등산길에서나 풀잎·나뭇가지·「볼펜」에 「라이터」까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맨 먼저 코로 가져가는 것도 그렇게 생긴 습벽 같다고 양씨는 말한다. 「버스」를 타도 맨 먼저 무의식적으로 냄새를 맡는다. 어떤 여성에게서 어떤 화장품 냄새가날 때 『아, 이건 내가 지난달 사흘 밤을 새워 만든 냄새로구나』하며 뿌듯한 보람에 젖는다.
끝으로 여성화장에 대해서 양씨는 『정치나 경제 등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만 여성화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말을 맺는다. <오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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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본질은 매혹의 완성이죠 남은 물론 나도 유혹할 수 있는"

[중앙일보] 입력 2007년 01월 30일




'새로 나온 향수'를 찾나요. 하지만 '샤넬 넘버5'처럼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는 향수는 있어도 새 향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향수는 한 브랜드에서 2~3년에 한 번 새 제품을 내놓을 뿐이죠. 다른 화장품처럼 '성능'이 아니라 '느낌'으로 선택되는 것이라 사람들 마음에 드는 새로운 향을 만드는 게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향수의 원료인 꽃이나 열매 등을 직접 재배하고 특정 향의 원액을 만드는 곳은 세계적으로 샤넬 브랜드 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새 향수는 귀합니다. 그런 향수 시장에 매우 이례적으로 샤넬이 올해 1월 무려 6가지의 새 향기를 선보였습니다. 1920년대 이후 판매된 4가지 향수와 새 향수 6개를 묶은 '레 젝스클루시브(Les Exclusifs)'입니다. 탄생을 총 지휘한 샤넬의 향수부문 최고 조향사(調香師) 자크 폴주를 일본 도쿄에서 만났습니다. 



# 시간 여행을 떠나 만든 향수



그는 6개의 향수가 "70년대 샤넬에 온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준비해 왔던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무엇을 준비해 왔을까. "향수는 우릴 어디론가 데려가야 한다"는 묘한 말도 했다. 샤넬에서 조향사는 단순히 향을 제조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영감을 얻고 새 향을 창조하는 '예술가'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활기차게 무언가에 집중하면 시간을 초월할 수 있어요. 그것은 유혹이고 여행이에요." 언뜻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설명은 이랬다.



"'코로망델'은 샤넬 여사가 아끼던 중국 후난 지방 병풍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나무로 만든 중국식 병풍 '코로망델'은 10개의 '레 젝스클루시브' 중 하나의 이름이다. 이 병풍 수집품은 샤넬이 작품활동을 하던 프랑스 파리 캉봉가(街)의 아파트에 지금도 보존돼 있다. "샤넬은 병풍을 사랑했어요. 나무판에 열 번씩 덧칠을 하고 그 안에 드넓은 풍경과 새.나무.꽃 등을 새겨 넣은 병풍은 '작품'이에요. 장인정신이 깃든…." 









그가 새 향을 얻기 위해 했다는 '여행'은 이런 것이었다. 샤넬의 아파트에 놓여 있는 병풍과 함께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 샤넬이 사랑했던 동양 병풍의 느낌을 향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 여행'을 통해 그는 파리 외곽에 있던 샤넬의 별장 '벨 레스피로'의 20년대 전원 분위기,'캉봉가 31번지'의 예술향기 등을 향수에 녹여 냈다.









# '특별한 코' 아니라 '지독하게 훈련된 코'



자크 폴주는 70년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샤넬의 코'로 불려 왔다. 조향사는'향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여러 향을 기억하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향사가 되려면 수많은 향료에 따라 냄새의 미세한 차이점을 구별하고, 향료의 성분까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수많은 향을 다 기억할까. "물론입니다. 향을 섞었을 때 어떤 향이 나올지도 상상할 수 있죠." '상상의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뜻밖에 '평범한 진리'를 꺼냈다. "저라고 '특별한 코'를 가진 것은 아니에요. 사람 코야 다 똑같죠. 저도 연구소에 있는 병마다 분류별로 메모를 꼭 붙여 놓죠. 향의 자세한 느낌 같은 것 말이죠. 아주 열심히 훈련한 것뿐이에요."



인체 기관 중 자극에 가장 민감해 제일 빨리 마비되는 감각이 후각이다. 그러면 하루 종일 향에 둘러싸여 사는 그는 어떻게 감각을 되살릴까. 이 대답 역시 평범했다."자주 주변 환경을 바꿉니다. 예를 들어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맡는 것이죠." 그렇다면 예민한 코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담배는 피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담배 안 피우시죠?"



"피웁니다." 가수가 목 관리에 신경 쓰듯 조향사는 코를 위해 금연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대가(大家)는 '특별한 비법'보다 '기본적 원칙'을 강조했다.







# '내 손안에 들어오는 신비감'



자크 폴주는 '내 손안에 들어오는 신비감'이란 말로 향수를 정의했다. "향수는 매혹적인 여성을 완성합니다. 단순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유혹할 수 있는 매력이요." 패션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향수의 본질이란 말이다.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서 잠옷 대신 향수 '넘버 5'를 입었던 것처럼.



최고 조향사가 생각하는 요즘의 향수는 어떤 것일까. "전엔 '꽃향기=여성'일 만큼 성별 구분이 있었어요.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여자가 바지를 입듯 남성 향수를 찾는 여성의 모습도 자연스러워진 거죠." 



그렇다면 그는 80년대를 풍미했던 '유니 섹스'가 최근 경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결코 '유니 섹스'는 아닙니다. 여자 향수에 남성적인 특징을 넣고 남성용 향수에는 섬세함이 깃든 식이죠." 그는 "각자의 온전한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가장 향기로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을 맺었다. 역시 진실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도쿄=조도연 기자






'샤넬 넘버 5' 비밀은

장미.일랑일랑.재스민 + 알데히드

휘발성 인공향 최초로 섞어 넣어



아침에만 꽃 수확



장미와 일랑일랑, 그리고 재스민이 주원료다. 장미는 향수의 도시라고 불리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 지방의 '로자 상티폴리아'라는 마을의 농장에서 채취한다. 햇빛으로 꽃이 시들기 이전인 아침에만 수확한다. 재스민 역시 그라스 지방에서 9월에만 수확하며, 일랑일랑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5~6월에 주로 채취한다. 원료를 수확하는 모든 농장은 샤넬과의 독점 계약을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받는다. 







농축액 150g 만드는 데 꽃 100㎏ 필요



채취한 꽃잎은 바로 밤(balm: 농축 고체) 형태로 만들어진 후 다시 앱솔루트(액체 농축액)로 변환된다. 농축액 1.5㎏을 만드는 데 필요한 꽃의 양은 무려 1t. 넘버 5는 자연 향과 인공 물질인 알데히드가 조화된 최초의 향수다. 알데히드는 휘발성 합성물질로 꽃 향기가 잘 퍼져 나가도록 도와 준다. 앱솔루트에 알데히드와 알코올 등이 첨가돼 향수 액이 만들어진다. 출시 당시 자연의 향에만 익숙해 있던 여성들에게 인공 향이 가미된 넘버 5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유다. 여태껏 맡아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향이었다. 







유리병에 숨은 과학



넘버 5의 용기는 그 향 못지않게 유명하다. 각진 유리병에 심플한 라벨이 붙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검은색 실과 밀랍 스탬프가 찍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넘버 5에서만 사용되는 '보드뤼사주(baudruchage) 봉합 법'이다. 향의 보존을 위해 병의 입구 주위에 얇은 막을 대고 두 줄의 검은색 면실로 묶은 다음 밀랍 봉인으로 샤넬의 더블 C 로고를 찍는다.



조도연 기자기고자 : 조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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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향기 마술사’, 올레 걸으며 한국의 향을 찾다

[중앙일보] 입력 2009년 11월 13일

40년 가까이 향수만을 만들어 온 디올의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시(60)가 제주에 왔다. 새 향수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조향사인 드마시가 서귀포시 안덕면 ‘카멜리아 힐’을 둘러보며 ‘한국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크리스찬 디올 제공] 

드마시는 제주의 자연을 모두 기억하려는 듯 끊임없이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지난달 말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를 둘러봤다. 남쪽 해안가를 따라 난 도보여행자들의 길 ‘올레’를 천천히 걸으며 꽃이며 나무, 풀, 바람, 물 등 제주의 자연을 직접 느꼈다. 특히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동백나무 정원인 ‘카멜리아 힐’에서는 처음 보는 몇 가지 식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털머위 은은한 꿀 냄새, 새로운 느낌



“털. 머. 위?” 또박또박 발음을 따라 하며 수첩에 털머위(우리나라와 중국ㆍ일본ㆍ대만 등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꽃을 그려 넣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였다. 사진을 찍었는데도 굳이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이 향을 기억해 내는 것은 향 자체만이 아닙니다. 어떤 순간의 기억을 각자 나름대로 머리 속에 각인하는 것이죠. 사진 속 꽃 형상과 내가 직접 그린 꽃잎의 모양이 비슷할 순 있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그는 카멜리아 힐 곳곳에서 자라는 털머위를 볼 때마다 코를 갖다 대고 향을 맡았다. 



“아직 한국을 많이 보진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향은 뭐다’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털머위 향에서 은은하게 꿀 냄새가 나더라고요. 순간 ‘꿀 향기가 나는 향수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향에 대한 영감은 이렇게 얻어집니다.” 



그는 조향사로서 영감을 얻는 원천이 단지 향만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인은 아시아의 라틴계’라는 말을 들었어요. 하하. 그만큼 열정적이란 뜻이었죠. 와 보니 실제로 사람들이 굉장히 밝고 호탕하게 웃네요. 어떤 일에 대해 뚜렷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듣던 대로예요. 설명하면, 이런 인상 전체가 ‘한국의 향’을 만들어 내죠.” 



좋아하는 마늘, 일할 때는 못 먹어





그는 ‘향수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 출신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향, 향수와 함께 자랐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인상적이고 오래된 향은 재스민이다.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곤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재스민 꽃 냄새는 아주 상쾌했죠. 지금도 재스민 향을 맡으면 그날의 상쾌함이 떠오릅니다. 형체도 없는 향기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게 후각과 향수의 장점이죠.” 



오전 내내 동백꽃과 제주 토종의 ‘하귤’ 등 각종 식물의 향을 맡아본 뒤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일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늘을 삼가는 그의 식습관 때문에 택한 메뉴다. 그는 주문할 때도 절대 마늘은 넣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내 고향 음식에는 마늘이 많이 들어갑니다. 당연히 많이 먹고 또 즐기죠.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먹지 않습니다. 마늘은 한 번 먹고 나면 2~3일 정도 내 몸에 그 향이 남아 있거든요. 당연히 후각이 떨어지고, 조향사로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죠.” 



피부에서 풍기는 마늘 냄새라, 역시 조향사는 보통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 촉수가 뻗어 있었다. 



“요즘도 매일 10가지 정도 향을 맞히는 연습을 합니다. 훈련을 통해서 후각을 발달시키는 거죠.” 



향수는 과학과 상상력의 만남



그는 조향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꾸준한 노력 외에 호기심과 겸손함을 꼽았다. 오전 내내 카멜리아 힐을 둘러보며 그가 보여준 모습은 호기심 많은 소년 같았다. 주변 풍경 모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제주 토종 귤이 눈에 띌 때마다 향을 맡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여러 가지 채소를 유심히 살펴보며 냄새를 맡고 꼭꼭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관련 질문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조향사에게 필요한 ‘겸손의 미덕’이란 뭘까. 



“후각은 원래 완벽한 게 아닙니다. ‘누구의 향수 또는 언제의 향기’라고 기억할 만큼 민감하긴 하지만 또 금방 둔해지기도 하죠. 조향사도 늘 완벽한 후각을 유지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자신의 코가 절대적이라는 자만심은 금물이죠.” 



그는 끝으로 향수를 이렇게 정의했다. 



“향수는 불안정한 균형이며 조화입니다. 향수 포뮬러(특정 향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료의 배합비 등을 규정한 공식)는 굉장히 엄격하고 과학적이며 분석적입니다. 반면에 향이란 매우 낭만적이면서도 쾌락주의적이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죠. 이 둘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이뤄내는 게 바로 향수죠.” 



제주=강승민 기자 



프랑수아 드마시는



크리스찬 디올의 조향사. 1971년 조향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샤넬 등을 거쳐 2006년부터 디올 향수 전체를 책임지는 조향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여름 선보인 ‘미스 디올 셰리-블루밍 부케’는 국내 출시 석 달 만에 2만 개 이상 팔렸다.




드마시가 추천하는 겨울 향





향수를 선물하는 것은 꽃다발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향수는 살아 있는 것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며 음악의 선율처럼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향수는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데 크게는 이렇다. 꽃향이 퍼지는 ‘플로럴’, 인도·중동 등의 향을 담은 ‘오리엔탈’, 새콤한 ‘시트러스’, 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아로마틱’, 나무 냄새가 나는 ‘우디’ 등 다섯 가지다.



겨울철이면 은은한 재스민 향기에 달맞이꽃 향도 나면서 약간 달큰한 나무 냄새가 풍기는 ‘샌달 우드’가 들어 있는 플로럴 계열 향수가 좋다. 샌달 우드가 당당한 여성을 표현한다면 재스민과 달맞이꽃은 우아함을 풍긴다. 겨울철 실내에선 시트러스처럼 튀는 향보다는 은은한 향이 더 알맞다.



남성에게는 우디 계열이 적당하다. 우디 종류는 향수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까지 부담 없이 소화할 만하다. 하루 종일 상큼한 향이 퍼지는 시트러스가 조금 가미된 우디 계열 향수가 겨울철 남성들에게 잘 어울린다. 이런 종류의 남성용 향수에 든 시트러스 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 겨울철에도 좋다. ‘아틀라스 시더’로 불리는 삼나무 향이 여기에 더해지면 톡 쏘면서도 상쾌한 향이 나기 때문에 남성적인 매력을 더욱 부각할 수 있을 것이다.기고자 : 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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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바세, 181년 역사 프랑스 겔랑의 ‘최고 조향사’

[중앙일보] 입력 2009년 12월 26일


겔랑의 최고 조향사인 티에리 바세가 향을 맡고 있다. 손에 든 종이는 ‘시향지’ 또는 ‘블로터’라고 불리는데, 종이 냄새조차 나지 않도록 만들어진다. [겔랑 제공]


“인터뷰 기사에서 다른 브랜드의 조향사 이름과 나란히 나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프랑스 화장품·향수 회사인 겔랑에 ‘최고 조향사(grand parfumeur)’ 티에리 바세(47)의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 회사 관계자가 보내온 답이다. 거대 기업의 소유주도 아니고,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지만 그를 인터뷰하는 조건은 이토록 까다로웠다. 겔랑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서 최고 조향사는 최고경영자(CEO)보다 높은 사람으로, 향을 창작하는 지휘자이자 개척자”라며 “향수와 화장품 등 제품의 향만 관리하는 타사의 조향사와는 격이 달라 그렇다”며 양해를 구했다. 스위스 출신인 그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향수·향료 업체인 지보당과 피어메니슈에서 조향사로 일하다 지난해 5월 겔랑의 최고 조향사 자리에 올랐다.



티에리 바세는 지난해 창업 180년을 맞은 겔랑의 4대 상속자 장폴 겔랑의 뒤를 잇고 있다. 그는 장폴 겔랑이 ‘이딜’ 등의 향수를 개발하는 것을 도왔으며, 크리스티안 디오르의 ‘어딕트’와 랑콤의 ‘이프노즈’ 등 명품 향수를 개발하며 경력을 쌓았다. 



겔랑은 1828년부터 4대에 걸쳐 소유주 가문의 상속자가 최고 조향사를 맡아왔다. 겔랑 가문의 후손이 아닌 사람으로 이 자리에 오른 건 바세가 처음이다. 가족기업이던 겔랑이 1994년 프랑스 명품 그룹인 LVMH로 넘어가면서 최고 조향사를 외부 인사 중에서 고른 것이다. 그는 회사에서는 물론 프랑스 사회에서 겔랑의 고용인이 아닌, 상속자에 준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그가 최고 조향사 자리에 올랐을 때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주요 기업의 주인이나 CEO가 바뀐 것을 보도할 때와 맞먹는 수준으로 이를 보도했다. ‘겔랑 가문의 전통을 잇는 최고 조향사’란 자리가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 ‘조향사 중의 조향사’로 불리는 그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했다. 전 세계에서 비교적 전망이 좋다는 한국 시장도 살펴보고, 한국에 숨어 있는 향 재료를 찾아 보기 위해서다. 그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최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원래 조향사가 되고 싶었습니까.




겔랑의 대표적 향수. 왼쪽부터 ‘이딜’, ‘샤이마르’, ‘아비루즈’(남성용).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산과 들을 다니며 허브 캐는 걸 좋아했어요. 학교에 가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허브를 찾아다니는 게 더 좋았습니다. 산과 들에 나는 여러 식물의 뿌리에서 나는 냄새, 풀에서 나는 향기를 맡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는 ‘허벌리스트’(허브를 캐고 다루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스위스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오래된 허브 가게에 간 적이 있습니다. 18세기부터 영업하는 아주 오래된 가게였는데, 그렇게 놀라운 장소는 처음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여러 가지 냄새에 둘러싸였어요. 그건 정말 어린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을 공부해 허벌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경험을 쌓으려고 일주일에 하루씩 허벌리스트 가게에 가서 일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향이 좋았던 것이군요.



“여덟 살 때였나, 어머니 친구에게서 맡은 향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공교롭게도 그건 겔랑의 ‘아비 루즈’(1965년 발매됐으며 ‘최초의 남성 향수’로 기록돼 있다)였어요. 남성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진한 향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허벌리스트의 꿈이 조향사로 바뀐 것은 언젠가요.



“1978년께였을 겁니다. 지보당 스쿨(생산량·매출액 기준 세계 1위의 조향 기업인 ‘지보당’이 스위스에서 운영하는 조향학교)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관심이 갔죠. 그러곤 지보당에 편지를 썼고 당시 교장이었던 아덩 선생님과 만나게 됐어요. 교장선생님은 제게 음악이나 미술에 관해 물으셨죠. 좋아하는 미술 작품이며 음악가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습니다. 향에 대한 것이나 제 후각 능력 테스트 같은 것은 없었어요. 선생님은 제 상상력과 감수성을 살펴보시고 맘에 드셨나 봅니다. 입학하라고 권하더군요. 바로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지보당 스쿨에 입학했습니다.”



-조향사에겐 후각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닙니까. 향수학교 교장이라면 학생의 후각 시험을 했을 것 같은데요.



“조향이 향에 관한 작업이란 건 맞는 얘기지만 후각은 후천적으로, 훈련에 의해 얼마든지 단련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덩 선생님은 제 감수성과 상상력이 새로운 향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보통 조향사들은 정교하게 냄새를 맡으려고 마늘을 삼가고 금연하는 등 코 관리에 무척 신경쓰던데요.



“전 담배도 피우고 마늘도 잘 먹습니다. 물론 담배가 건강에 해로울 순 있겠지요. 건강을 망쳐서 일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담배를 피우거나 마늘을 먹는 건 조향사의 후각에 별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향사의 후각은 오직 훈련에 의해 발달합니다.”



-뛰어난 후각이 아니라면 조향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요.



“뛰어난 머리와 체력입니다. 현재 조향에 쓰이는 기본 향은 3000가지 정도 됩니다. 조향사는 이를 모두 알아야 합니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일일이 그 향을 구별하고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향을 어떤 순서로 섞어야 머릿속에 그린 향기가 나올지 해답을 얻을 수 있죠. 물론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려면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결국 훌륭한 조향사는 제조 과정에 쓰일 향을 결정하는 등 과정을 잘 통제하면서 상상 속에 그린 추상적인 향을 현실로 구체화해내는 작업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창의력이 있어야죠.”



-하긴 그 정도는 돼야 복잡한 ‘포뮬라’(향수에 들어가는 원료의 배합비가 규정된 공식)를 완성하겠군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향수는 과학이 아니거든요. 포뮬라라는 말도 별로 쓰고 싶지 않아요. 걸작 회화가 단지 잘 조합된 물감은 아니잖습니까. 요리사의 음식도 마찬가집니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적은 레시피가 맛을 내기 위해 재료를 화학적으로 어떻게 섞는지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향수의 설계도를 포뮬라보다는 레시피라고 부르고 싶네요.”



-조향사들은 대개 화학을 전공한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들었는데요.



“실무를 해보면 화학 지식은 일하면서 배워도 충분한, 기본적인 것들뿐입니다. 이유를 납득할 순 없지만 아직도 유명한 조향학교에선 대학에서 화학이나 관련 전공을 한 사람들만 뽑긴 합니다.”



-체력은 의외의 조건인 듯합니다.



“스승으로 모시는 장폴 겔랑이 원료를 구하러 다니는 것은 흡사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한 장면 같았어요. 탐험용 부츠를 신고 전 세계 어디든 새로운 향의 원료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다니셨죠. 그러자면 탐험가 같은 강한 체력은 필수예요. 이 때문에 전엔 조향사 대부분이 남자였죠. 요즘 조향사는 남녀 비율이 반반 정도 됩니다만 성에 관계없이 체력이 좋아야 할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게 가장 잘 맞는 향수를 고를 수 있을까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좋아요. 향수는 자유죠. ‘롬므 겔랑’(지난해 바세가 내놓은 남성용 향수)은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쿠바 칵테일 ‘모히토’를 소재로 삼았어요. 쿠바를 여행하면서 마신 모히토의 맛과 바의 분위기를 향수에 옮겨담고 싶었죠. 조향사가 모히토를 주제로 삼았다고 해서 뿌리는 사람도 모히토로 느낄 필요는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즐기든 그건 향수 뿌리는 사람 마음이에요. 외출 몇 분 전에 뿌리면 좋다든가, 신체 어느 부위에 뿌려야 향이 잘 난다든가 하는 것에 굳이 얽매이지 마세요. 조향사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향수를 만들어 내듯 향수를 즐기는 사람도 향수를 뿌리는 그 순간만큼은 자유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조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례가 그랬던 모양입니다. 으스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 관심은 어떻게 하면 멋진 향수를 만들까 하는 것뿐입니다.”



강승민 기자



‘181년의 향기’ 겔랑은



나폴레옹 3세 즉위 기념 향수 156년 지난 지금까지도 생산



전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수백 가지의 향수, 수십 개의 향수 브랜드 중에서 조향사가 자체적으로 원료 조달부터 제품 기획과 개발·생산까지 책임지는 곳은 겔랑과 샤넬 정도다. 나머지 브랜드는 대개 지보당·피어메니슈·IFF 같은 유럽의 세계적인 향료 업체에 개발과 생산을 맡기고 마케팅만 한다.



겔랑은 최고 조향사가 향수의 개발과 제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는 ‘통합 생산 체제’를 갖춘 덕에 지난 181년 동안 700여 개의 향수를 내놓으며 유럽 향수 시장을 이끌 수 있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주문으로 1853년에 내놓은 ‘오 드 콜로뉴 앵페리알’은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1925년 출시한 ‘샤이마르’는 여성용 향수 시장에서 여전히 베스트셀러 다.



겔랑은 1828년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이 프랑스 파리에 연 향수 가게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역사학자들은 겔랑을 ‘세계 최초의 향수 브랜드’ 로 꼽고 있다. 창립자 의 아들 에메가 가게를 상속 받으면서 ‘최고 조향사’ 자리를 함께 물려받았다. 그 아들인 장자크를 거쳐 장자크의 손자 장폴까지 향수 명가의 상속자가 계속 최고 조향사 자리를 맡았다.



◆조향사=향을 만드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향수 등 화장품 분야에서 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식료품과 세제 등 각종 생활용품과 의약품 등에 들어가는 향도 담당한다. 조향사 양성기관으로는 장자크 겔랑이 프랑스 베르사유에 세운 ‘이집카(ISIPCA)’와 조향기업 ‘지보당’이 스위스에 세운 학교가 유명하다.기고자 : 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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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ITEM 샤넬 N°5 오 프르미에르

[중앙일보] 입력 2012.05.01 11:28

90년 사랑받아온 ‘여인의 향기’…아침 이슬 이미지를 덧입다



“나는 그 누구도 만든 적이 없는, 매우 독특한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 진짜 여인의 향이 나는 그런 여자 향수를 원했다” -마드모아젤 샤넬-

향수를 단 하나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꼽겠는가. 답은 샤넬 N°5일 것이다. ‘영원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향수. 세기의 여배우들이 선택한 샤넬 N°5는 하나의 향수를 넘어, ‘후각의 예술’로 까지 평가된다. 최초의 현대적인 향수로 시작해 약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그 향은 계속되고 있다.

당대 대표 여배우들이 사용한 향수

 1954년 마릴린 먼로는 “잠옷 대신 샤넬 N°5를 입고 잔다”고 했다. 이후에도 1970년엔 까뜨린느 드뇌브, 2004년엔 니콜 키드만 등 당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이를 사용해, 샤넬 N°5는 최고의 ‘여성 향수’로 세상에 알려졌다.

 왜 사람들은 이 향수에 열광할까. 브랜드 샤넬은 이를 ‘미스터리’와 ‘품질’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미스터리’란 그 성분을 짐작하기 힘든 독창적인 향기를 가진 것을 말한다. 이 향수는 수 십 가지의 에센스가 성분으로 배합돼 조화를 이룬다. 이로 인해 어떠한 한가지 에센스 향이 부각되지 않는다. 샤넬 하우스의 조향사인 쟈끄폴쥬(Jaques Polge)는 이것을 ‘추상’이라고 해석했다.

 두 번째 인기 비결인 ‘품질’은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했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 향수의 품질이 높으면, 만들어질 때의 상태 그대로 향이 변하지 않고 오래 간다. 뿌린 후의 잔향이 은은하게 오래가는 것은 물론이다. 프랑스 남부에서 샤넬만을 위해 재배되는 자스민과 5월의 장미에서 추출한 에센스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21년 처음으로 샤넬 N°5가 만들어질 당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은 현대적인 여성의 모습을 부각시킬 수 있는 특별한 향수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패션에서 시도했던, 파격적인 ‘여성의 새로운 모습’을 향기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파트너로 삼은 것은 당시 유명한 조향사였던 에르네스트 보였다. 그에게 샤넬이 요청한 것은 ‘모던하면서 추상적인 향기’였다. 당시에는 자스민?로즈 같은 한가지 에센스를 부각시키는 것이 보통이었어서 샤넬의 주문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에르네스트 보는 몇 가지 조합을 만들어 샤넬에게 선보였고, 샤넬은 그 중에서 망설임 없이 한가지를 집어 냈다. 다음은 샤넬이 향수를 선택한 현장에서 오고 간 에르네스트 보와 샤넬의 대화다.

-에르네스트 보 : “이 견본에는 80개 이상의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들 것이고, 이에 따라 제품 가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샤넬 : “그 중에서 가장 비싼 재료는 무엇인가요?”

-에르네스트 보 : “자스민입니다. 자스민보다 더 비싼 것은 없죠.”

-샤넬 : 그럼 자스민을 더 넣으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수를 만들고 싶어요.”
 
쟈끄 뽈쥬, N°5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2008년 N°5는 ‘샤넬의 코’라 불리는 조향사 쟈끄 뽈쥬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에르네스트 보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N°5는 ‘퍼퓸’형태였다. 쟈끄 뽈쥬는 기초가 되는 N°5에 충실하면서, 조금 더 세심하고 가벼운 향기를 담은 ‘N°5 오 프르미에르’를 만들었다.

 영감은 아침 이슬에서 받았다. 아침 이슬의 부드럽고 신선한 느낌을 그리며, 추상적인 새로운 향기로 재창조했다. 그림으로 비유한다면, N°5의 수채화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는 오 프르미에르로 N°5의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이 드러나길 원했다. 예를 들어 함유된 코모로스 섬의 일랑일랑은 가벼운 느낌으로, 탑노트로 사용한 장미와 자스민 향에 부드럽고 신선한 느낌을 더해준다. 진정한여인의 향기가 나는 여자 향수로, 젊고 트렌디한 샤넬 핸드백과 매치시킬 수 있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사진=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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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기 전 노출 안되는 곳에 뿌리면 좋아

샤넬의 ‘코’ 크리스토퍼 셸드레이크는 기자 앞에서 향수를 시향할 때 1, 2초 가량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의 코에서 맴돈 향은 이야기가 되어서 기자에게 전달됐다. 샤넬 코리아 제공 


크리스토퍼 셸드레이크는 샤넬의 대표 조향사 자크 폴주와 함께 향수사업부를 이끄는 샤넬의 ‘코’다. N˚19 제품 출시를 앞두고 그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다. 

샤넬 N°19은 샤넬 여사가 생전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향수다. N°19의 특징을 말해준다면…. 

“N°5보다 훨씬 여성적이고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자유를 찾는 1970년대 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시된 지 40년이 지나 여성 소비자들의 취향도 많이 바뀐 터라 오늘날의 생활방식으로 다시 재해석하려고 했다. 1970년대 출시 당시 N°19이 개성이 강한 동시대의 여성을 표현하려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 가치는 유효하다. N°19 푸드르는 머스크(사향노루의 분비물 냄새) 향과 파우더 향이 부각돼서 느낌은 더 부드러워졌다.” 


어린 시절 인도에서 자랐는데 조향사로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인도는 굉장히 영적인 곳이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당초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려 했으나 기초과목으로 수학, 물리학, 예술을 배우다 우연히 향을 창조하는 조향사의 길로 들어섰다.” 

조향사를 하려면 후각이 뛰어나야 할 것 같은데 하루 중 일이 더 잘되는 때가 있는가. 

“아침에 향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잠자는 동안 신체감각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신체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조향사가 가져야 할 요건이 있다면….

“조향사는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결국 조향사도 세상의 모든 향을 맡으며 사랑스러운 향을 만들어내는 만큼 리서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물론 감각이 뛰어나기도 해야 하나 그 감각을 수도승처럼 관리할 필요는 없다. 문화적 풍요로움이 가장 중요하다.” 

좀 더 특별하게 향수를 뿌리는 방법이 있을까. 

“원하는 방식으로 뿌리는 것이 좋다(Perfume yourself!). 샤넬 여사는 키스를 받고 싶은 곳에 뿌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옷을 입기 전에 향수를 뿌리거나 머리에 뿌리는 것도 좋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 선호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태양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 곳에 뿌리는 것이 좋다.”

파리=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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