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의 사랑에 바치는 향, 샬리마
브랜드 시그너처 <9>GUERLAIN
홍주희 기자 , 사진 겔랑 제공 | 제256호 | 20120204 입력
|
향기는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향의 매력에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된다. 숨을 쉬는 한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 향이다.매년 200종이 넘는 향수가 쏟아진다. 브랜드·디자이너·스타가 이름을 걸고 향수를 만든다. 향기의 힘으로 국경·문화를 초월해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겔랑은 185년간 신비로운 향의 세계를 이끌어 온 브랜드다. 300개가 넘는 향수가 천부적 후각을 지닌 겔랑 가문의 코에서 탄생했다.
1828년 화학자였던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은 파리에 향수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 향수는 식물의 향을 추출해 희석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천연 향을 변화시켜 분위기까지 표현하는 향수를 즉석에서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초창기 겔랑의 하이라이트는 1852년 나온 ‘오 데 코롱 임페리얼(Eue de Colon Imperiale)’이다.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유제니 황후를 위해 헌사품으로 만들었다. 오렌지 블로섬, 레몬, 라벤더, 로즈메리 등을 섞어 신선하고 상쾌한 향을 냈다. 황후는 편두통을 완화하는 데 향수를 썼고, 흡족해하면서 겔랑을 ‘황실 공식 업체’로 지정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도 겔랑 고객이었다. 그는 겔랑에게 자신만의 향수를 의뢰했고, 1837년 발표한『세자르 비로토』를 쓰는 내내 책상 위에 향수병을 뒀다. 겔랑의 향기 속에 향수 제조업자인 세자르 비로토의 흥망사를 다룬 소설이 탄생했다.
|
1958년 장 폴 겔랑은 할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지독한 사팔뜨기였던 장 폴 겔랑은 대신 후각에 축복을 받았다. 10대 시절 코냑 시음회에서 냄새만으로 최고의 코냑을 골라냈다. 향수 입문 당시 이미 3000가지 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향수를 만들라”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카트린 드뇌브를 위해 ‘나에마(Nahema)’를, 애인에게 구애하기 위해 ‘삼사라(Samsara)’를 만들었다. ‘삼사라’는 ‘샬리마’와 함께 각각 겔랑 향수 매출의 15%를 차지하는 베스트셀러다.
90년대 들어 겔랑가(家)는 고민에 빠졌다. 명품 시장은 인수합병으로 거대화됐고 장 폴 겔랑을 이을 후계자도 마땅치 않았다. 1994년 겔랑은 LVMH에 편입됐다. 경영에서는 손을 뗐지만 장 폴 겔랑은 2002년 은퇴할 때까지 겔랑의 향을 책임졌다. 그가 지목한 티에리 바세가 현재까지 수석 조향사를 맡고 있다.
150년 넘게 기업을 경영한 겔랑 사람들은 CEO보다 조향사로 불리기를 원했다. 바람에 떠다니고 공기 속에 퍼져나가는 무한한 후각의 세계에서 향을 잡아내고 기억해 신비롭고 관능적인 향수로 빚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컷터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색직업GUIDE①] 조향사를 알아보자 (0) | 2013.01.10 |
---|---|
색과 향 [ 色과香 ] (0) | 2012.10.15 |
[퍼온 글] 그녀 스친 자리, 살짝 이는 향기 (0) | 2012.07.25 |
[퍼온 글] 나만의 향수 만들기 (0) | 2012.07.25 |
[퍼온 글] “향기는 시, 소리 없이 많은 것 보여주죠” (0) | 2012.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