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스친 자리, 살짝 이는 향기

[중앙일보] 입력 2011년 06월 29일

여름은 사계절 중 기온과 습도가 가장 높다. 한줌의 바람이 고마운 이때, 그 바람결에 좋은 향까지 전달되면 기분은 더욱 상쾌해진다. 하지만 최고급 향수의 향이라도 땀과 잘못 섞이면 순식간에 싸구려 방향제가 풍기는 ‘악취’가 된다. 여름 향수,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향수 전문가에게 나만의 향기를 고르는 법, 하루 종일 기분 좋은 향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움말=정미순(갈리마르 퍼퓸스쿨 원장), 박성희(향수 컨설턴트)





여름엔 과일과 꽃, 지중해의 향기가 좋아









1 ‘자르뎅 수르 트와(프랑스어로 옥상정원이라는 의미)’라는 이름답게 과일·꽃·야생풀의 향기가 싱그럽게 어우러졌다. 에르메스. 남녀공용. 2 파랑·노랑·빨강이 겹쳐 있는 병 디자인은 ‘해변에서의 댄스파티’를 표현한 것이다. 캘빈클라인. 남녀공용. 3 푸른 바다와 붉은 산호 가지가 만든 풍경이 물속에 잠긴 듯 시원한 이미지를 준다. 이세이 미야케. 남성용. 4 타투(문신) 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몸으로 표현된 병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장폴 고티에. 여성용. 5 감귤나무 열매, 으깨진 나뭇잎, 이슬을 머금은 꽃잎 등 정원에서 느낄 수 있는 상큼하고 편안한 향들만 모은 것이 특징이다. 겔랑. 여성용. 6 뜨거운 여름 오후에 풀과 꽃이 무성한 들판을 서성이던 기억을 향으로 표현한 제품이다. 캘빈클라인. 여성용. 7 꽁꽁 얼린 얼음처럼 불투명한 병과 양귀비꽃잎 그림으로 브랜드의 고유한 이미지와 신선한 향의 느낌을 표현했다. 겐조. 여성용.





프루티·플로랄·시트러스·그린·아쿠아…. 여름 향수를 고른다면 이들 향기를 가진 것을 고르는 게 좋다. 산들바람에 꽃무늬 치맛자락 흩날리는 모습처럼, 가볍고 상쾌한 향이 나는 것들이다.



특히 올해는 프루티 플로랄과 시프레·아쿠아·오셔닉 향이 대세다. 프루티와 플로랄 두 가지 향이 섞인 프루티 플로랄 계열의 향수는 달콤하면서도 화사한 게 특징이다. 아쿠아·오셔닉 계열의 향수는 시원하고 깔끔한 잔향이 있다. 올해는 ‘시프레’처럼 지중해에서 영감을 얻은 향수를 내놓은 브랜드가 많다. 지중해는 유럽에서도 고급 휴양지가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라 그 여유 있는 분위기를 향수에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싱그러운 자연과 정원을 표현한 그린 계열의 향도 여럿 보인다.



겐조 퍼퓸의 박현주 과장은 “향수 한 병에는 여러 종류의 향이 조금씩 섞여 있다”며 “브랜드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향과 느낌은 병 색깔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콤하고 화사한 프루티와 플로랄 향은 핑크색, 지중해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시프레·아쿠아 향은 파란색, 싱그러운 느낌의 그린과 시트러스는 녹색 병에 담는 식이다. 그는 “용기만 잘 관찰해도 원하는 향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농도 옅은 향수를 조금씩 자주 뿌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게 된다. 이 때문에 땀에 의해 향이 변하기 쉽다. 높은 온도와 습도로 향기도 빨리 많이 퍼진다. 다른 계절과 같은 양을 사용했다면 여름에는 그 향의 농도가 진하게 퍼져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갈리마르 퍼퓸스쿨의 정미순 원장은 “여름에는 농도가 옅은 것으로 조금씩 자주 뿌리는 게 좋다”며 “보통 때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정도 뿌리는 게 적당하지만 여름 향수는 아침·점심·저녁 세 번으로 나눠 뿌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를 일상활동 시간이라고 가정하면 4시간에 한 번씩 뿌려주면 좋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 원장은 “여성이라면 피부에 직접 뿌리지 않는 것도 향기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얇은 거즈에 향수를 뿌린 후 그것을 브래지어 안에 넣어두는 것이다. 심장 가까이에 거즈가 놓여 있어 향 발산이 좋아진다. 또 피부에서 나는 땀은 브래지어가 흡수하기 때문에 향이 변질하지도 않는다. 코 바로 아래 가슴에서 향이 지속적으로 나기 때문에 내 기분도 좋아지고 마주한 상대에게도 향이 잘 전달될 수 있다.



두 개의 향수 섞어 ‘나만의 향기’ 만들자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는 유명한 광고 카피가 있다. 향기가 사람의 추억을 자극하는 좋은 매개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카피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향기로 기억되려면 ‘나만의 향’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향수는 초저녁에 구입하는 게 좋다. 인간의 후각은 초저녁 이후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향수를 뿌리지 않은 상태에서 초저녁에 매장에 나가 마음에 드는 향수를 반드시 피부에 뿌린 후 1시간 정도 후 자신의 체취와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 판단하고 구입하는 게 좋다. 박성희 향수 컨설턴트는 “여성의 경우 배란기에 후각이 좀 더 예민해지므로 이때 향수를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전 원장은 “두 개의 향수를 함께 뿌려 나만의 향을 갖는 것도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연달아 두 번 뿌리는 ‘향수 레이어링’이라는 방법이다. 단, 두 개의 향수를 선택할 때는 규칙이 있다. 향이 무겁고 진한 것들만 사용하면 향기 자체도 무거워져 머리가 아프기 십상이다. 가장 좋은 레이어링 방법은 ‘가벼운 것+가벼운 것’ 또는 ‘가벼운 것+무거운 것’의 조합이다.
향기를 표현하는 단어 



향수 업계에서 향기를 표현하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첫째는 주로 사용된 원료를 알려준다. 둘째는 그 향기가 가진 느낌이 무엇과 닮았는지 이미지를 표현한다. 다음은 여름 향수에서 주로 사용되는 향기를 표현하는 단어.



프루티(fruity) 사과·복숭아·딸기·포도 같은 달콤한 과일 향.

플로랄(floral) 장미·백합·라일락 등의 꽃향기.

시트러스(citrus) 오렌지·레몬 등 상큼한 감귤류의 향.

그린(green) 허브라고 불리는 녹색 풀이나 잎의 싱그러운 향.

시프레(chypre) 그린 계열의 향으로 특히 지중해 키프로스 섬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향.

아쿠아(aqua)·오셔닉(oceanic) 푸른 바다 빛의 향조와 순수하고 맑은 물의 느낌을 표현한 향.



가벼운 향수란 



향수는 농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여름에 뿌리기 좋은 옅은 농도의 것은 오 드 투왈렛(Eau de Toilette), 오 드 코롱(Eau de cologne)이다. 향수 원액을 물과 희석시켜 농도를 묽게 만든 것이다. 몸과 머리카락에 바르고 뿌리는 ‘퍼퓸 보디 파우더’ ‘보디 미스트’(스프레이 타입의 화장수), ‘헤어 미스트’도 농도가 옅은 향수다.



향의 종류 중에서도 진하고 잔향이 오래 남아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다. 수목이 우거진 깊은 숲 속에서 나는 ‘우디’, 따스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한 ‘오리엔탈’, 자극적인 느낌이 나는 ‘스파이시’, 바닐라나 과자 향처럼 먹음직스러운 디저트 향이 나는 ‘구르망’, 가죽 냄새가 나는 ‘레더리’ 등이다. 이들 향은 여름에는 너무 과한 느낌이 나는 향기로 피하는 게 좋다.
“향수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내가 즐거워지죠”



‘겔랑’ 5대 조향사 티에리 바세 






















꽃다발을 들고 행복해 하는 여성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향수 ‘이딜’.




티에리 바세(51·사진)는 183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프랑스 브랜드 겔랑이 가문의 후손이 아님에도 5대 조향사로 지목한 인물이다. 겔랑은 초대부터 4대까지 모두 가문의 후손이 조향사가 됐다. 겔랑 가문의 후손들이 조향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이유지만 4대 조향사인 장 폴 겔랑이 전 세계에서 선별한 젊은 조향사를 대상으로 본인들도 모르게 치르게 한 시험을 통과한 것이 진짜 이유다. 그는 크리스찬 디올이 자랑하는 향수 ‘디올 어딕트’를 만든 인물이다. 겔랑에 합류한 2006년부터는 겔랑 옴므, 이딜 등의 향수를 만들었다. 향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그에게 향수 이야기를 들었다.



-예민한 후각을 가지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한가.



“호기심을 많이 갖고 여러 가지 향을 직접 맡아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향을 표현하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표현법이 있어야 기억하기도 쉽다. 향을 만드는 일은 과학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없는 향을 끊임없는 상상해야 하는 작업이다.”



-내게 어울리는 향을 찾으려면.



“나만의 고유한 향도 필요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향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사실 가장 좋은 향은 지금 누군가로부터 ‘당신에게서 참 좋은 향이 나는군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의 향기다. 향수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자신이 즐거워지는 수단이기도 하다. 여름향수라고 해서 한 가지만 쓸 이유가 뭐가 있나. 태양이 쨍쨍한 날도 있고 비가 하루 종일 오는 날도 있다. 가족을 만날 때도 있고 연인을 만날 때도 있다. 여행을 떠났다면 방문한 나라마다 어울리는 향이 따로 있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향을 여러 개 두고 그때그때 여러 가지 향을 자유롭게 즐겨라.”



-아침에 뿌린 향을 오래 간직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향수와 향이 같거나 잘 어울리는 보디 젤과 로션을 이용해 샤워를 한 후 향수를 뿌리면 좀 더 오랫동안 기분 좋은 향을 유지할 수 있다.”



-좋은 향수란.



“좋은 향수는 좋은 향기와 매력적인 디자인의 케이스를 갖고 있다. 겔랑은 프랑스 왕실의 상징인 벌 문양을 케이스에 쓸 수 있도록 인정받은 브랜드다. 그 정신은 현재까지도 혁신적인 디자인 창조로 이어지고 있다. 좋은 향은 좋은 원료에서 시작된다. 겔랑은 ‘겔리나드’라고 하는 6가지 핵심 천연 원료를 전 세계 원산지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다. 내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이들 나라를 여행하며 품질을 관리하는 일이다.”기고자 : 서정민.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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